정글만리 우리나라 어느 대기업 중국 지사장이 퇴직을 하고 나서 몇 달 만에 다시 중국엘 왔소. 그리고 자신이 근무했던 지사를 당당히 찾아갔소. 모두 반색을 하리라 생각하고 지사문을 열었는데, 모두가 '당신 뭐하러 왔어?'하는 식의 냉랭한 얼굴이었소. 그 사람이 당황해서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소리쳤소. "무슨 일로 왔는지 용건을 알아봐". 그 사람은 지난날 무슨 잘못으로 호되게 야단을 맞았던 과장으로, 이제 부장이 되어 있는 사람이었소. 그는 도망치듯 허둥지둥 사무실을 나왔소. 그리고 뒤늦게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소. 그는 순진하게도 옛날 업무와 연관된 무슨 일을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지사를 찾아갔던 것이오. 한번 떠난 곳을 뒤돌아보는 것처럼 어리석고 비참한 일은 없소. 사람은 조직을 떠나는 순간 그 자리.. 더보기 우상의 눈물 그랬다. 슬픈 일이지만 우리들은 언제부턴가 교사들을 한낱 껄끄러운 존재로 여길 뿐 오히려 그룹 과외 선생의 완벽함에 더 매료되곤 했다. 그것은 상대적이었다. 우리들이 교사들을 존경하지 않는 것처럼 교사들도 우리를 사랑으로 가르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룹 과외 선생처럼 철저하게 얼굴에 철판도 깔지 못하고 어정쩡한 태도를 취했다. 문제는 지배에 대한 견해의 다름이었다. 그네들은 옛날 훈장이 누렸던 권위가 고스란히 쥐어지길 바랐고 실상 그러한 권위만이 변화된 가치 속에서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보상이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러한 인습적 권위에 대해서 코방귀를 날릴 수 있을 만큼 그보다 더 완벽하고 조직적인 권위의 다스림 속에 몸을 맡기길 좋아하고 있었다. 전상국, 우상의 눈물 15쪽 더보기 학생인권의 시대에 학교운동부를 생각한다. 내가 학교 운동부와 접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였다. 심심치 않게 전학 오는 낯선 친구들, 그들은 수업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고 매일매일 축구만 했다. 방과 후에는 운동장을 점령하고 체계적인 훈련을 받는 듯 했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려 보면 운동부 아이들이 생각보다 축구를 잘 하지 못했다는 것과(더 잘하는 비운동부가 대회에 대신 나가곤 했었다) 운동부 담당 선생님이 담임이 되면 출장을 자주 가서 좋았던 기억밖에는 없다. 단편적인 기억이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종목이 축구에서 야구로 변했을 뿐, 운동부 아이들은 여전히 하루 종일 운동만 했고, 수업엔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잊혀졌다. 초중고 12년을 운동부와 함께 지냈지만 그 중에서 프로선수로 성공(여기에서 성공이란 .. 더보기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