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어느 대기업 중국 지사장이 퇴직을 하고 나서 몇 달 만에 다시 중국엘 왔소. 그리고 자신이 근무했던 지사를 당당히 찾아갔소. 모두 반색을 하리라 생각하고 지사문을 열었는데, 모두가 '당신 뭐하러 왔어?'하는 식의 냉랭한 얼굴이었소. 그 사람이 당황해서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소리쳤소. "무슨 일로 왔는지 용건을 알아봐". 그 사람은 지난날 무슨 잘못으로 호되게 야단을 맞았던 과장으로, 이제 부장이 되어 있는 사람이었소. 그는 도망치듯 허둥지둥 사무실을 나왔소. 그리고 뒤늦게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소. 그는 순진하게도 옛날 업무와 연관된 무슨 일을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지사를 찾아갔던 것이오. 한번 떠난 곳을 뒤돌아보는 것처럼 어리석고 비참한 일은 없소. 사람은 조직을 떠나는 순간 그 자리에는 딴 사람이 채워지고, 전임자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지워져 버리는 것이오.
김현곤도 똑같은 기분이라 아무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직장에서 안 사람들은 직장 떠나면 친구가 될 수 없다는 말이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직장생활이란 한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열차를 타고 가다가 제각기 다른 역에서 내려 뿔뿔히 흩어져 가는 열차놀이 같은 것인지도 몰랐다.
조정래, 정글만리 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