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육 이야기

스승의 날에 - 선생님을 추억하며

아직도 평교사로 계시는 고2 담임선생님을 추억한다.

스승의날이라 제자랍시고 전화를 드렸더니 목소리가 많이 기운이 빠지셨다.

예전에는 너그러움과 여유가 찬 목소리였다면, 지금은 기력이 많이 쇠하신 것 같아 걱정이다.


선생님은 답답하기로 유명한 우리 학교 교직에서 조금 특이한 캐릭터셨다.


학생들을 두들겨 패고 머리를 가위로 자르고 강제로 야자를 시키는 흔하디 흔한 남고에서

두발단속과 체벌을 안하는 담임의 존재는 얼마나 단비같았던지. 그때는 전교조교사들도 엉덩이를 사정없이 두들겨 팼으니...


졸업하고나서야 알았지만 우리를 괴롭히던 이들은 모조리 승진라인을 타고 하나같이 어디 교감 교장이 되어 잘나갔고,

그나마 학생들을 위한 선생님들은 50대 후반에 되어서도 평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게다가 조전혁 덕분에 모교 선생님들은 교총인지 전교조인지 모조리 까발려졌고 우리 편에 있던 선생님들은 대부분 전교조였단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난 선생님 성향을 볼 때 전교조라 믿어 의심치 않았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전교조가 아니었고 심지어 졸업 후 술잔을 기울일 때 본인 스스로 당신 성향은 너희들이 칭하는 수구꼴통(!)이라고... 말씀하시던 것이다. 그 때는 한창 촛불집회가 열릴 때였는데 조선일보에서나 할법한 말씀을 늘어놓으셔서 나를 경악시키기도 하셨다.


그렇지만 난 여전히 선생님을 존경한다.


선생님은 단 한마디로 내 길을 바꿔주신 분이며, 학생들을 아꼈던 몇 안되는 분이셨다.

본인의 보수적인 생각을 말씀하실 때에도 묵묵히 듣고만 있던 내게 왜 반박을 안하냐며 빨간물(?)이 덜 들었다고 허허 웃기만 하셨던 분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선생님은 그닥 수업기술이 뛰어나신 것도 아니었고, 영어 발음이 좋은 것도, 열정이 있지도 않으셨다.

그렇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로 내게 용기를 주셨고(선생님 덕분에 난 수능성적을 100점 넘게 올릴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무관심일지도 모르는 여유로(본인은 귀찮아서 무관심했을 뿐인데 우리는 그 여유가 좋았던 것일 수도 있다. 점점 확신이 굳어진다) 팍팍한 학교 생활에 숨통을 틔어주셨으니.


바쁘다는 핑계로 선생님을 못뵌지가 7년이 넘어간다. 올해는 꼭 찾아뵈어야겠다.

'교육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학생인권의 시대에 학교운동부를 생각한다.  (0) 2015.07.21
어떤 장학사의 분노  (0) 2015.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