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이야기 썸네일형 리스트형 학생인권의 시대에 학교운동부를 생각한다. 내가 학교 운동부와 접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였다. 심심치 않게 전학 오는 낯선 친구들, 그들은 수업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고 매일매일 축구만 했다. 방과 후에는 운동장을 점령하고 체계적인 훈련을 받는 듯 했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려 보면 운동부 아이들이 생각보다 축구를 잘 하지 못했다는 것과(더 잘하는 비운동부가 대회에 대신 나가곤 했었다) 운동부 담당 선생님이 담임이 되면 출장을 자주 가서 좋았던 기억밖에는 없다. 단편적인 기억이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종목이 축구에서 야구로 변했을 뿐, 운동부 아이들은 여전히 하루 종일 운동만 했고, 수업엔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잊혀졌다. 초중고 12년을 운동부와 함께 지냈지만 그 중에서 프로선수로 성공(여기에서 성공이란 .. 더보기 스승의 날에 - 선생님을 추억하며 아직도 평교사로 계시는 고2 담임선생님을 추억한다. 스승의날이라 제자랍시고 전화를 드렸더니 목소리가 많이 기운이 빠지셨다. 예전에는 너그러움과 여유가 찬 목소리였다면, 지금은 기력이 많이 쇠하신 것 같아 걱정이다. 선생님은 답답하기로 유명한 우리 학교 교직에서 조금 특이한 캐릭터셨다. 학생들을 두들겨 패고 머리를 가위로 자르고 강제로 야자를 시키는 흔하디 흔한 남고에서 두발단속과 체벌을 안하는 담임의 존재는 얼마나 단비같았던지. 그때는 전교조교사들도 엉덩이를 사정없이 두들겨 팼으니... 졸업하고나서야 알았지만 우리를 괴롭히던 이들은 모조리 승진라인을 타고 하나같이 어디 교감 교장이 되어 잘나갔고, 그나마 학생들을 위한 선생님들은 50대 후반에 되어서도 평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게다가 조전혁 덕.. 더보기 어떤 장학사의 분노 어찌 어찌 하다가 장학사랑 식사를 하게 됐다. 컨설팅장학 후에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였는데, 으례 술자리가 그렇듯 통성명이 오가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주로 나는 어른들과의 술자리에서는 듣기만 하는 입장인데, 가치관이라던가 내 생각을 섣불리 드러냈다가 입는 피해(?)를 여러 모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장학사는 나와 내 옆에 앉은 신규에게 본인이 타 교대 출신이며, 그 설움을 이기기 위해서 온갖노력을 다해왔노라고 웅변을 토해냈는데 그 이야기 끝에 거산초 이야기가 나왔다. 형식적으로 고개만 끄덕 끄덕이고 있던차에 '거산초'라는 단어가 들리자 귀를 귀울이게 됐는데, 마침 나에게 알고 있냐고 묻기에 잘 안다고 대답하였다. 그 뒤에는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기대하면서. 그래도 장학사쯤 됐으니, 교육감.. 더보기 이전 1 다음